돈이 문제냐 지갑이 중요하지

 셀라리움 아난데일은 조금 오래 구부린 자세를 비로소 펴면서 긴장을 풀었다. 돈 계산이야 대충 해도 될 것을, 그녀의 동료는 언제나 전의를 불태우며 허투루 낭비되는 구석이 없어야 한다고 유난이었다. 오블리비언 게이트 앞에 얼쩡거리는 드레모라처럼 무시무시한 기운을 뿜고 있는 동료를 모른 척하면서. 셀라리움은 다 떨어져가는 마법 재료와 약초 목록을 상인에게 건넸다. 사려는 것이 맞는지 확인하는 것은 그녀의 동료가 할 역할이었다. 품질까지 꼼꼼히 검수하면서 내쉬는 한숨소리를 듣자니 이번에도 적당히 넘어갈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팔고 싶은 사람은 비싸게 팔고 싶고 사고 싶은 사람은 싸게 사고 싶은 것이 당연하다지만 그것도 적당히지.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뭣보다 그녀가 거래하는 상인은 나름대로 정직하게 물건을 파는 것으로 인기가 좋았다. 괜히 서로 얼굴 붉힐 일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의 동업자 카이가 소개해준 만큼 괜한 말이 나왔다간 곤란해질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다 해서 11가지 골랐군. 1200골드면 되겠는데.”

 “뭐? 잠깐만요, 그건 저번 주 시세―!”

 “―우리가 파는 사람보다 더 잘 알겠어? 잠시만요.”

 예상 범위에서 한참 남는 금액이었다. 셀라리움은 이미 충분히 만족한 결과였고, 이번에도 불만이 생기는 것은 그녀의 동료뿐이었다. 그러게 좀 더 안정된 다음에 사자니까! 옆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지만 셀라리움은 이번에도 모른 척 주머니를 뒤져 지갑을 찾았다. 언제나 오른쪽 주머니에 넣어두는 지갑이…….

 “어라?”

 “뭐야, 왜 그래?”

 “나 지갑 안 챙겼나? 아닌데.”

 옷에 붙어있는 모든 주머니를 뒤졌지만 애석하게도 지갑은 나오지 않았다. 이런 낭패가 있나. 지갑은 어차피 예산 금액만큼의 돈만 있었으니 딱히 아쉬울 건 없었지만 당장 낼 돈이 없으니 큰일이었다. 창백하게 질린 셀라리움의 얼굴을 보더니 그녀의 동료가 키득 웃었다. 그러더니 귀에 대고 얄밉게 속닥거리는 것이다. 난 그 가격으로는 내 돈 안 써.

 “집 가서 배로 낼 테니까 지금은 네가 계산 좀 해.”

 “내 지갑은 바가지 요금 같은 거 몰라.”

 “그럼 어쩔 수 없네. 계약 해지하고 다른 사람 찾아봐야겠다.”

 “그러셔? 이번에는 재계약 하자고 해도 안 받아.”

 “미안하지만 저번주에 계약서 다시 들이민 건 너야.”

 “우리 셀렌이 낮부터 헛소리를 하네.”

 투닥투닥 말다툼에, 다리 아래 발로는 쉴새없이 서로를 걷어차면서도, 셀라리움의 동료는 어쨌든 대신 계산을 마쳐주었다. 잘 넘어가나 했더니 마지막까지 장난스럽게 발을 꾸욱 밟는다. 유치하긴. 셀라리움은 헛웃음을 지으면서도 못내 아쉬운 소리를 내었다.

 “오다가 지갑을 떨어뜨렸나? 아끼던 거였는데.”

 “이참에 제발 새로 사. 안 그래도 그거 언제 바꾸나 했는데 잘 됐다 아주.”

 “너 내 지갑에 그만 유감을 가지도록 해.”

 “네가 어지간한 걸 써야 말이지!”

 셀라리움의 동료는 진절머리를 내면서 셀라리움의 미적 감각을 탓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셀라리움의 소지품 중에 미적 조건을 우선으로 선택받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녀가 생필품을 고르는 조건은 언제나 단순했다. 얼마나 손에 독특한 감각을 주느냐. 그런 점에서 그 전까지 셀라리움이 쓰는 지갑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소유자에게 즐거움을 선사해주었다. 언뜻 지나칠 수 있었던 야시장에서 그녀가 유일하게 건진 최고의 물건이었다. 재고가 하나 밖에 남지 않은 것이 유일한 유감이었다. 이거저거 만지면서 고르고 싶었는데.

 “미끌미끌하면서도 보드라운 게 정말 좋았지…….”

 “아 그럼 색깔이라도 좀 멀쩡해 보이는 걸 고르던가.”

 “그 때 빨간색 밖에 없다고 했잖아.”

 “그러게 왜 그걸 고르냐고, 하고 많은 것 중에서.”

 “하고 많은 것 중에서 그게 제일 마음에 들었으니까 골랐다. 뭐. 내가 남의 시선까지 신경 써야 해?”

 기준이 남들과 다르게 독특한 셀라리움이 고르는 것은 때때로 굉장한 파격을 몰고 왔는데, 넉 달을 고이고이 모셔 쓰던 그 지갑은 색깔과 생김새와 촉감까지 더해 ‘웬 내장에 돈을 넣어 다니냐.’ 같은 박한 평가가 바로 옆에서 튀어나올 때도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손을 한시도 가만 두기 싫은 셀라리움은 툭하면 지갑을 꺼내 손으로 쪼물거리곤 했는데. 그러면 여지없이 눈 뜨면 달고 다니는 혹이 비명을 질렀다. 넌 정말 취향이 나빠! 내 시각에 유해해! 그러나 남의 시력에 셀라리움이 굳이 신경 쓴 적은 없었다. 자기 시신경도 못 챙겨서 이 꼴이 났는데 뭐 하러 관심을 두어야 하는가.

 집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리 그래도 남이 이목에 대해 신경 써야 할 이유를 일장 연설로 늘어놓는 동료의 말을 한귀로 듣고 흘리던 셀라리움은 갑작스레 찢어지는 비명을 듣고 얼굴을 찡그렸다. 귀가 예민한 그녀를 위해 일정 크기 이상으로는 큰 소리를 내지 않는 사람이 갑자기 소리를 지를 까닭을 짐작도 못하던 셀라리움은 곧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저 주머니 뭐야! 무슨 저주 인형이야!?”

 그렇게 징그러워하던 지갑이 현관 앞에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내지른 비명인 모양이었다. 내가 이 근처에서 떨어뜨리고 가는 걸 누가 보고 주워서 놔줬나 보지. 시큰둥하게 반응한 셀라리움은 기꺼이 지갑을 회수했다. 그녀를 즐겁헤 해주는 촉감이 여전히 생생했다. 다행 중 불행으로 내용물은 텅 비었지만.

 “주워가려던 사람도 이 주머니는 끔찍해서 버렸나보다.”

 “내 지갑한테 사과해.”

 “싫어.”

 내가 버리라고 하지 않는 것으로 다행으로 여겨야 할 판에. 제법 뻔뻔한 말을 하는 동료에게 비웃음을 던지느라 셀라리움은 미처 뒤에서 이쪽을 확인하는 듯한 시선을 눈치채지 못했다.

 

 

 

셀렌은 전맹까지는 아니지만 확실히 저시력자. 이걸 정확한 언급 없이 써보려고 노력은…해봤지만 잘 되었나 모르겠음.

특수성을 가진 캐릭터 또한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내가 당사자가 아니어서 잘 모르고 헛발질 하는 결과가 생길까봐 조금 두렵지만 구더기 무서워서 된장 못 담글까…!

여기까지는 정말 프롤로그의 프롤로그 격인데 이 부분까지는 생각나서 1시간 동안 후루룩 뚝닥….이 다음부터는 어떻게 될지…방향은 있는데 잘…잘 되겠지! 자관글 늘 신경쓰는 게 있는데 하나가 더 얹어지니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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