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둥새] 10분 간격 알람은 죄악이다

 

 아퀼라가 필라스의 방 앞을 지날 때도 그 안은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자정이 지나도록 여전히 조금 열린 문 틈 사이에서 새어나오는 건 빛뿐만이 아니라 뭔가를 사납게 휘갈겨 쓰는 소리 또한 들렸다. 아, 그러고 보니 저 녀석이 듣는 강의 중에 어떤 건 수기로만 과제를 쓰게 만드는 미친 교수가 있댔나. 그가 알 바는 아니었으나―그러게 강의평가를 잘 읽든가―아주 조금은 측은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아퀼라는 열려있는 문을 슬쩍 밀었다.

 “아직 멀었냐?”

 “끝났으면 이러고 있겠어?”

 아나, 잘못 썼잖아. 짜증 섞인 혼잣말과 함께 펜이 종이 위를 거칠게 죽죽 긋는 소리가 났다. 아닌 게 아니라 필라스는 지금 속이 뒤집히고 있었다. 시대착오적인 미친 교수 이번에야말로 기필코 죽일 테다. 시대가 어느 때인데 과제 베끼는 걸 검증하는 것도 귀찮다고 아예 수기로만 쓰게 시키는 법이 어디 있나.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그는 신경질적으로 읽고 있던 논문을 파라락 넘겼다.

 뒤에 서 있는 아퀼라를 돌아보려는 기색도 없이, 필라스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종잇장만 노려보았다. 안경 뒤에서 비치는 눈은 시뻘개져서는 흉흉하기 그지없었다. 치렁치렁하게 늘어뜨린 하얀 머리칼도 한데 묶어서 종이를 붙잡고 거의 사투를 벌이는 모양새다. 그런 그를 뒤에서 째려보는 감람색 눈이 새초롬해지건 말건. 틀렸으면 틀린 거지 왜 나한테까지 짜증이야. 아퀼라는 입술을 삐죽거렸다. 종이를 빠르게 넘기던 손이 뚝 멈췄다. 순간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을 지은 필라스는 팍 책을 덮었다. 끝내 과제에 질식해 미쳐버린 처절한 대학생이 히죽히죽 웃었다. 잘 하면 내일 과제 제출과 동시에 교수의 모가지도 겸사겸사 물어서 비틀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망할 교수. 이러고도 A 안 주면 진짜 죽여야지.”

 “**한다. 드디어 뉴스 출연하려고?”

 “어. 하는 김에 너도 같이 묻어버리게.”

 시뻘개진 필라스의 두 눈이 아퀼라를 향했다. 바빠 죽겠는데 왜 말을 거냐는 의문이 뾰족하게 드러났다. 이게 걱정을 해줘도. 아퀼라는 욱하는 심정을 담아 빤빤한 녀석의 뒷통수를 후려칠까 잠깐 고민했다. 하지만 필라스가 현재 제정신이 아니라는 점은 참작해줄 만도 했다. 미친놈은 화를 낼 대상이 아니라 연민의 대상이 되어야 마땅했다. 본인이 들으면 극대노할 결론을 내린 아퀼라는 고개를 까닥이고는 다시 물었다.

 “너 내일 1교시 아니냐? 언제 자게?”

 “이게 그 미친 1교시 과제라고.”

 “**. 미리미리 좀 하지.”

 “야! 내가 이 새끼 강의만 듣는 줄 알아? 너 자꾸 쓸데없이 말 걸 거야? 너는 안 자?”

 기껏 신경 써준 것이 무색하게, 필라스는 와악 소리를 지르더니 제 머리카락을 쥐어뜯기 시작했다. 저런. 아퀼라는 속으로 쯧쯧 혀를 찼다. 이제는 정말 돌이킬 수 없이 맛이 간 모양이다. 너른 마음으로 봐주기로 한 그는 폭주하는 필라스를 버려두고 문을 닫았다. 말마따나, 제가 알아서 하겠지. 자기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은 아퀼라는 끝끝내 잊어버리고 말았다.

 ……필라스에게 1교시는 없는 강의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그러니까, 제 딴에는 노력한 것이라 할 수도 있었다. 어쨌든 과제 제출 기한도 달려 있고, 필라스는 기껏 밤새워 들인 수고를 부질없는 것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아퀼라도 그 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해는 이해고, 납득은 납득이었다. 필라스가 어떤 상황이든, 그는 그것만으로는 필라스의 이 만행을 납득할 수는 없었다.

 이 열 받는, 매일 똑같은 멜로디로 시끄럽게 우짖는 알람 소리가! 저나 1교시지 이쪽은 공강이니까 한 번에 일어날 자신 없으면 알람 쓰지 말라고 누누이 말을 해도!

 “이 새끼가 진짜.”

 아퀼라는 흘끗 시간을 확인했다. 저 빌어먹을 알람이 처음 울린 건 오전 6시가 확실했다. 그것이 지금 오전 7시 30분이 될 동안, 10분 간격으로 총 9번 울린 것도 확실했다. 10분 간격으로 깨어버리는 탓에 그조차 피곤해서 지금까진 봐줬지만 10번은 아니었다. 진짜 아니지! 이 미친놈을 콱! 아퀼라는 당장 쿵쾅거리는 걸음으로 필라스를 향해 걸어갔다.

 닫혀있는 문을 쾅 열어 제껴도 일어나야 할 놈은 인사불성이고 알람만이 요란했다.

 “** 이거 또 폰 어디다 뒀어?”

 창문 밖으로 던져버려서 다시는 필요 없게 만들어줘야지. 아퀼라는 기세등등하게 필라스가 베고 누운 베개 머리맡을 집요하게 뒤졌다. 빌어먹을 머리털은 대체 왜 이렇게 널려서 손에 끼이는지. 이 와중에도 태평하게 눈 뜰 기미가 없는 희여멀건한 놈이 얄미워 아퀼라는 습기 없이 버석한 필라스의 입술을 주욱 잡아 당겼다.

 “으으읍!! 놔!”

 외마디 비명과 함께 필라스가 아퀼라의 손을 즉시 쳐냈다. 그럼에도 필라스는 전혀 잠에서 깬 기색조차 없었다. 눈도 못 뜨는 상대에게 아퀼라가 버럭 소리 질렀다.

 “깼으면 폰이나 내놔! ** 시끄러워서 골이 지끈거리네!”

 아퀼라가 으르렁거리면서 윽박질러도 손을 홰홰 내젓기만 하는 필라스는 여전히 눈도 뜨지 않았다. 그런 주제에 몸을 휙 돌려 옆으로 눕기까지. 아퀼라는 결국 필라스의 머리채를 한 움큼 틀어쥐고 폰 어디 있냐고! 라고 한껏 짜증을 부렸다. 필라스는 머리 표면과 귀에서 징징 울리는 통증에 끙 앓는 소리를 내었다.

 “놓으라고…….”

 “** 그러게 누가 알람은 처맞추고 ** 안 일어나고 **이야!”

 “아, 냅둬…….”

 “하…….”

 아퀼라는 눈을 번뜩 빛냈다. 그는 단숨에 필라스를 이불에 덮어 말아버렸다. 그렇게 좋아 마지않는 이불과 한 몸이 되게 해준 다음에는 발로 뻥 걷어차 침대 바깥으로 떨어뜨렸다. 쿵 소리가 나자마자 떨어진 망할 놈이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그 위를 실컷 베고 누운 베개로 짜근짜근 숨도 못 쉬게 꽉꽉 내리눌렀다. 자라 자. **** ** 아주 ** 영원히 자라!

 “오늘 푹 자려던 사람이 이 꼬라지를 보면 좋은 말이 나오겠냐, 안 나오겠냐? 대답이나 해봐라.”

 대답을 할 숨구멍을 열어주지도 않고 아퀼라는 씩씩거리며 필라스를 짓눌렀다. 자다가 벼락을 맞은 비루한 자는 턱턱 막히는 숨과 자꾸만 뒤엉키는 두터운 이불 사이에서 몸부림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 소동에 침대 위에 있던 것들이 꾸물꾸물 따라 떨어져 내렸다. 충전기 코드에 연결해 둔 필라스의 휴대전화도 마찬가지였다.

 “아오 이게 여기 있네.”

 때마침 손이 닿을 법한 거리에 떨어진 그것을 손에 쥔 아퀼라는 필라스의 위에서 물러났다. 요란한 알람음이 뚝 꺼지는 동시에 밀려온 정적을 필라스의 거한 기침소리가 다시 물러가게 했다. 저, 하여간 무식한, 따위의 필라스가 숨넘어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끄집어내는 말이 기침 소리 사이로 들렸지만 아퀼라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뭐라고 내내 조잘거리는 그 입에 대신 막 알람을 끈 휴대전화를 들어 그대로 처박았다.

 “우웁―!”

 “또 알람 켜놓고 더 처자. 그 땐 ** ** 창문 밖으로 던져버릴 거니까, 알았냐?”

 한참을 분풀이 삼아 필라스의 입 안에 휴대전화를 우겨넣을 것처럼 콱콱 짓누르며 욕을 퍼붓던 아퀼라는 성이 찰 만큼 분을 풀었다. 창문 너머로 한 번 던지면 면했을 참을 인 10번의 값어치를 하고 나서야 그는 이불과 엉킨 필라스와 그의 휴대전화를 버려두고 상쾌한 얼굴로 훌쩍 방을 나섰다.

 “커헉, 죽는 줄 알았네. 저거 진짜 미친 거 아니야?”

 저놈의 더러운 성질머리. 씨근거리면서 이불에서 겨우 벗어난 필라스는 반성이라고는 조금도 찾을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이미 나가고 없는 아퀼라에게 욕을 퍼부었다. 그러다 시간을 보고서야 으아악! 비명을 지르고 나갈 준비를 서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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