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누스] 더위가 끼치는 영향

 숨만 쉬는 것도 짜증스러울 정도로 후덥지근한 날이 쭉 이어지고 있었다. 놀랍지도 않게도. 니아흐가 알려준 바에 따르면, 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기온은 이 지역의 평균 수준이라고 했다. 평균이란다! 죄다 이 더위에 안 죽고 어떻게 살고 있는 거지? 답이 궁금하지도 않은, 풀리지 않아도 신경도 안 쓸 물음은 그럼에도 지독하게 레일린을 괴롭게 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덜걱덜걱 요란하게도 떨어대면서 바람을 뿜어대는 자동회전 팬을 붙잡고 있는 것뿐이었다.

 “너 혼자 다 쓰고 있으면 좋냐?”

 바람이 덜 닿는 것을 귀신같이 알아챈 니아흐가 즉시 레일린을 비난했다. 그렇다고 귓등으로라도 신경 쓸 레일린이 아니었다.

 “너는 내가 더워하든 말든 신경도 안 썼잖아.”

 “그거 내가 주워갖고 온 건 벌써 머리에서 지웠어?”

 “그러게 새로 하나 사면 좀 좋아.”

 “그거로도 충분하지 뭘.”

퍽이나 충분하겠다. 공기가 정체되어 있는 것보다야 낫긴 하지만, 소음 심한 이 조그만 회전 팬 하나로는 입고 있는 옷이 젖어서 들러붙은 것도 제대로 말려주지도 못했다. 하여간 이 망할 지상으로 올라온 뒤로는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가 고작 냉방 마법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다 그만 두통까지 일으킨 것을 알면 그동안 어떻게든 까내리려고 애쓴 이들이 들으면 백날을 웃어도 모자랄 것이다.

 빌어먹을 두통. 지긋지긋한 더위. 레일린은 여전히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마법도 쓰지 못하게 되자 레일린의 가치는 단숨에 뚝 떨어졌다. 실시간으로 쪄서 익어가는 레일린을 보다 못한 니아흐가 근처 고철 쓰레기를 모아두는 곳에서 주워 온 것이 이것이었다. 마력석을 동력으로 움직이는 작달만한 자동 회전 팬.

 어찌 보면 굉장히 사치스러운 물건이겠으나 동력원이 제거된 팬은 별 볼 일 없었다. 보통 사람에게라면. 그렇지 않아도 두통에 시달리는 레일린에게 마법을 구현하는 것은 더 심한 지끈거림을 선사하는 일이었지만, 그저 통로에 동력을 불어넣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었다.

 말하자면 그는 현재 자가발전 중인 발전기였다.

 “더 시원한 거 없어?”

 결국 레일린이 하는 것이라고는 이미 몇 차례나 반복된 질문을 반복하는 것이다. 뻔한 질문만큼이나 뻔한 대답은 금세 돌아왔다.

 “없어. 그거 끼고 살아라.”

 “남들은 대체 어떻게 사냐고. 이 미친 날씨에!”

 “소리 지르면 더 덥기만 하지 무슨 도움 되냐? 나가서 물이나 끼얹든가.”

 아닌 게 아니라 니아흐의 등은 아무것도 걸친 것 없이 물기만 흥건했다. 레일린은 등을 흠뻑 적신 수분의 함량 중 땀은 어느 정도로 차지하고 습기는 어느 정도로 차지하고 있을지 판단해보려다가, 좀처럼 통증이 가시질 않는 머리 상태에 짜증이나 내뱉지 않게 애써야 했다.

 “나더러 너처럼 다 헐벗고 다니라고? 네가 참 퍽이나 좋아하겠구나.”

 “뭐, 뭐 이 **야?!”

 “그럼 뭐. 옷 입고 물 끼얹으면 참도 시원하겠다.”

 별 생각 없이 내뱉는 말에도 니아흐는 길길이 날뛰었다. 레일린은 그저 얼음 생각만이 간절했다. 모르고 살았으면 모를까. 아낌없이 누리고 살았던 만큼 없어진 것에 대한 갈망은 갑작스레 커지기도 했다.

 얼음 같은 소리. 마을을 2개쯤 지나가기 전까지는 얼음에 대해 아는 사람도 없을 성 싶었다. 주점만 가도 뻔했다. 순 밍밍한 물탄 맛. 시원하지도 않고 그저 실온을 따라 미적지근한. 그래도 그 주점 주인은 술병을 항상 그늘에 두니 그나마 온도가 일정하게 약간이나마 낮았다. 이 정도 더위에는 그만한 온도라도 절실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주점에 가자는 제안을 니아흐가 달가워할 것 같지 않았다. 대신 레일린은 니아흐의 뒷모습이나 늘어지게 감상하기로 했다. 옅은 잿빛을 띄는, 잘 짜인 근육이 돋보이는 등줄기를 타고 물기가 뚝뚝 흐르는 광경은 제법 절경이라고 할 법 했다. 투명하게 흘러간 그 흔적을 거슬러 올라가 손끝으로 더듬어보는 상상을 하던 그는 이크, 아무것도 아닌 척 고개를 돌려야 했다. 너무 빤히 보고 있던 탓일까. 의심으로 그득 찬 니아흐의 까만 눈이 홱 이쪽을 향했기 때문에. 찔릴 것이 몹시도 많은 레일린의 보랏빛 눈은 자연히 수그러들 수밖에 없었다.

 “뭘 봐?”

 “왜? 보면 안 돼?”

 “뭘 그렇게 변태**처럼 보냐고.”

 “네가 보란 듯이 하고 다녔잖아.”

 변명이라기에는 몹시도 치졸한 대답이었다. 그야 저더러 보라고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모르지 않으므로. 니아흐의 눈이 점점 가늘어지는 만큼 레일린의 고개도 점점 반대로 틀어져갔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레일린은 차라리 니아흐가 제 등짝이라도 후려갈기면서 욕이라도 하길 바랄 정도였다. 순전히 제 마음 편해지자고 바라는 것이었으니 이루어질 리 없는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레일린은 불쑥 자기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것을 알아채고 눈을 질끈 감았다.

 불쑥 다가온 커다란 손은 등짝에 강렬한 통증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그를 통째로 집어 드는 악력을 행사했다.

 “뭐, 뭐야!?”

 “너 하는 거 보니까 영 안 되겠다 싶어서.”

 “그냥 때려라 때려!”

 “누가 때린대?”

 레일린을 집어 들고 집 밖으로 끌어낸 니아흐는 물을 길어 쓰는 펌프 옆에 레일린을 내려두었다. 그리고서는 빨래를 할 때나 쓰는 커다란 나무통을 굴리며 돌아왔다. 그리고는 냅다 그 안에 레일린을 집어넣었다. 어안이 벙벙한 눈으로 레일린이 제게 일어나는 일을 되짚을 무렵에는 이제 물에 한껏 얻어맞아 입은 옷과 통째로 적셔지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이제 좀 조용해졌네. 좀 낫냐?”

 일견 뿌듯하게까지 들리는 목소리에 레일린은 흠뻑 젖은 자기 꼴을 보던 시선을 들어 니아흐를 쳐다보았다. 혼자 들어가 앉기만 해도 꽉 차는 좁은 나무통 속에서, 물은 가슴 바로 아래까지 차오르고, 그 아래 물에 푹 담가진 옷자락은 물을 따라 하늘하늘 흔들리며 이 뜬금없는 상황이……한없이 가볍게 느껴지게 했다. 끝내 그는 터져나오려는 너털웃음을 막아내지 못했다. 뭐가 그렇게 웃겨? 라는 물음에 대답도 못할 정도로.

 “아니. 이게 네가 생각한 최선의 방법이라니.”

 “고작 그게 그렇게 웃겨?”

 “그래. 웃겨서 이대로 죽을까 했다.”

 괘씸하다는 듯이 레일린은 니아흐에게 물을 한 움큼 퍼 올려 던졌다. 그러나 상대는 아예 펌프에 손을 대고 있었으니 승부는 결정 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한 움큼의 물과는 비교도 안 될 물줄기에 또 다시 얻어맞은 레일린이 치사하게! 라고 외쳤으나 돌아오는 것은 또 한 번의 패배뿐이었다. 푸학! 하고 숨을 들이켜는 동시에 그는 도끼눈을 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야! 뿌릴 거면 예고하고 뿌려!”

 “어떤 멍청한 놈이 기습을 예고하고…….”

 니아흐는 잔뜩 놀려주려고 꺼내든 말을 점차 흐리게 뭉갰다. 공교롭게도 그것은 레일린이 물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앞으로 쏠린 머리카락을 귀찮다는 듯 뒤로 쓸어 넘기는 순간과 일치했다. 그리고 불행하다면 불행하게도 레일린은 무척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예쁜 것도 잘못이다. 그렇지?”

 그리고 한층 더 불행하다면 불행하게도 니아흐 또한 레일린의 헛소리에는 제법 내성이 쌓여있었다.

 “겉만 예쁘지 속은 텅 빈 것만 못한 건 필요 없어.”

 “그건 또 무슨 헛소리야!”

내가 지금은 좀 헤매고 있어서 그렇지 한 번 알기만 하면 다 잘하거든? 금세 당황한 레일린이 빽 소리를 높였다. 지하도시에서 배운 지식은 지상으로 올라와서는 그다지 쓸모가 없어진데다 말도 통하지 않으니 그는 모든 경제 활동에서 거의 뒷전이었다. 그 점을 레일린이 유독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니아흐라고 모르지는 않지만, 가끔 저 기고만장한 빨간 머리는 사실 적시로 꾹꾹 눌러줄 필요가 있었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하는데.”

 “나도 알아.”

 “근데 뭐, 왜!”

 “나대지 말라고.”

 즉시 돌려주는 대답에 벙찐 레일린의 표정이 일품이었다. 그것을 오래오래 눈 안에 새겨놓으면서, 니아흐는 일부러 웃는 얼굴로 한 번 더 확인 사살을 했다. 나대지 말라고. 그리고는 영영 멍청한 얼굴을 한 채로 굳어버린 듯한 레일린의 얼굴에 물을 확 끼얹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게 진짜……야!”

 한참을 뒤늦게 반응한 레일린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물의 부력에 퍼져있던 옷가지가 표면장력으로 인해 걸친 이의 실루엣을 세밀하게 표현해준 덕분에, 이번에 말이 없어지는 쪽은 니아흐가 되었다.

 “실컷 놀았으면 그만 들어가자. 덥다.”

 두 번은 넘어가지 않겠다는 것처럼 니아흐가 말을 돌렸다. 아예 레일린을 들어다 욕조에서 빼버리고, 남은 욕조를 질질 끌고 가서는 실컷 가지고 놀았던 물을 텃밭에 뿌리기까지. 레일린은 그런 니아흐의 뒷모습에 대고 뭐라고 하려다가, 풋 웃어버렸다. 그게 단지 붉게 물든 귀가 눈에 띄어서는 아니었다. 확실하게.

 “웃지 마.”

 “너 보고는 안 웃었어.”

 “또 거짓말이나 치지.”

 “내가 뭐 하러?”

 젖은 옷이 짓누르는 무게가 상당했으므로 레일린은 쭉 팔을 위로 치켜들며 기지개를 켜는 척하며 심상하게 대꾸했다. 어쩌다 니아흐가 뒤를 돌아보며 이쪽을 살펴도 보이지 않을 각도로 슬며시 몸을 틀어서. 하여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딱 그의 머리카락보다 좀 더 환하게 빛나는 노을 지는 하늘뿐이었다.

 “별 짓거리 다 했더니 배나 고프네. 밥이나 먹자.”

 “네가 하게?”

 “내가 어떻게 해? 주방 태워도 되면 할게.”

 “미친 거 아냐? 누가 태우래? 그러면서 말은 꼭 자기가 할 것처럼…….”

 아직 들어가기도 전부터 집에서 내쫓을 것처럼 구는 니아흐를―그도 그럴 것이 그들의 집은 아직 온전하게 그들 소유가 아니었다―비웃듯이 쳐다본 레일린이 먼저 집 안으로 발을 들였다. 야 너 물기! 아오 진짜! 니아흐가 쫄래쫄래 쫓아 붙어서는 잔소리를 퍼부어댔다. 그러나 레일린은 언제나처럼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나한테 냅다 물 끼얹은 건 너니까 네가 감당해라.

 그래봐야 어림도 없지. 솥뚜껑만한 손으로 등짝을 몇 대 얻어맞고 비명을 빽빽 내지르고 나서야 레일린은 곱게 회복된 마력으로 건조 마법을 쓰는 것으로 바닥을 흥건하게 적신 물기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이제 됐냐?! 이 지독한 폭력배같으니…….”

 “더 맞아보려고?”

 “아니요. 사양할게요.”

 다행히 제때 수그리는 법을 배운 레일린은 저녁을 간도 안 된 오트밀만 떠먹어야 할 뻔한 운명을 회피할 수 있었다.

 

 

 

본가에서 프린터가 고장났다고 업어온 것이 컬러 레이저 복합기여서 득템했다!! 는 마음으로 테스트해볼 겸 적당히 페이지 수 나오는 단편 이래저래 해볼려니까 6페이지여서 4배수에 맞지 않는 바람에 2장 더 급하게 채우느라 으아아으아아아

양면인쇄까지 시도했는데 처음에는 드라이버 설치가 꼬인건지 뭔지 안되다가 다 지우고서 껐다 켜고서 다시 했더니 잘되길래 짱….!

재밋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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