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29 00:17

 

꿈이라서 내용도 되게 허술하고 설정구멍임……읽는다면 그냥 감안하고 읽으세요 (무책임!

사람들이 아낌없이 자기가 할 수 있는 걸 하고도 풍족하게 살았다. 그러니 누구도 자기 열등감에 사로잡혀 화내지 않고 좋은 세상이었다. 과학의 발전은 눈부시게 빠르고 크게 확장되어 마법과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은 원하면 자기의 시간을 되돌려 과거에서 다시금 선택할 수 있었고, 막연한 미래에 두려워하지 않고 미리 대책을 세울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신기했을 일이 더는 신기하지 않고 당연한 것이 된 시대에도 이따금은 현재의 문명을 버리고 과거로 회귀해 사람이 사람다운, 시간에 맞서 싸우며 서로 경쟁하고 투쟁해야 한다는 무리가 나타났다. 대중은 그런 무리에게 반발하고 찍어누르기를 원했다.

나는 그런 대중의 부름에 차출된 전투 요원이었다. 구체적인 무기는 검 한 자루였지만, 이것을 손 대지 않고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었다. 파트너와 함께 세계와 시간을 누비며 불순분자들이라 지정된 사람들을 잡아 넘기던 나는 대체적으로 만족하고 살았던 것 같다.

하루는 어떤 학교의 졸업식에서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특별 축사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뜻밖의 요청에 무척 당황했지만 집에서 멀지도 않겠다, 나는 선선히 수락했다. 이동 경로는 포탈을 쓸 수도 있었지만 설치 유지 비용이 많이 드는 관계로 보통은 모노레일 같은 전철을 이용했다. 어쩐지 모든 길이 아스팔트 대신 철길이었다. 집 앞을 지나는 무인 모노레일을 잡아 타고 그대로 학교를 향하는 포탈 앞에서 내린 나와 파트너는 늦지 않게 학교 졸업식에 도착했다. 무사히 (대본없이) 졸업식 축사를 마친 나는 일 외에 외출한 것도 오랜만이겠다 요즘 애들이 어디서 뭘 하고 노는 지 궁금하다고 파트너에게 제안을 했다. 우리 취향에 맞는 건 없을걸, 같은 얘기가 먼저 나왔지만 이미 마음이 돌아선 나는 집으로 가는 방향과 반대되는 모노레일을 잡아 타버렸다.

그리고 알게 된 것은 대체적으로 룸카페 같은 것이 활성화되었다는 것인데, 삼삼오오 모인 애들이 각각 한 방씩 차지하고 노는 문화였다. 어째서인지 팥빙수가 유행이었다. 그것도 뷔페식으로. 얼음을 먼저 퍼낸 뒤에 시럽만 뿌릴지, 팥을 얹을지, 또 과일 토핑이나 찹쌀떡 (자르지 않은 통짜) 을 올릴지는 각자의 선택이었다. 나는 그와중에 그냥 찹쌀떡만 종류별로 집어서는 (찹쌀떡도 속이 팥앙금인 것도 있었지만 딸기 소스나 귤 소스가 있는 것도 있었다) 배정된 방에 돌아왔다. 밥 안 먹고 떡만 먹냐는 파트너의 물음이 걸작이었다.

우리 때는 뭐하고 놀았더라?
다를 게 있나 매일 게임하고 놀았지.
우리 그러고보니 같이 놀던 다른 애 있었잖아 걔는 어떻게 된 건가 몰라 갑자기 실종되다니.

추억 얘길 하면 꼭 옛날 얘기를 하게 되고. 나와 파트너는 오래 알고 지낸 사이였으므로 이런저런 지난 얘기를 늘어놓으며 웃었다. 건넛방에서 애들이 노래를 부르고 우당탕 뛰는 소리를 듣다가 우리는 묘한 얘기를 들었다.

애들 사이에서 수상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예의 회귀론자 놈들 얘기였다. 이자식들은 하다하다 세상의 진실은 어디에도 없고 숨겨져 있다는 얘길 퍼뜨리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학생들은 그걸 그냥 뜬소문으로 치부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나 파트너는 그걸 그대로 두고 있을 수는 없었으므로, 소문의 출처를 주변 학생들로부터 탐문하면서 근원을 쫓아 달렸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저 뜬소문만 들어 아는 정도였지만 호기심이 강한 몇몇은 희미하게나마 쓸만한 일부분을 말해주었다. 타임머신이 개발된 이후 그 기술이 악용되고 있다던가, 지금의 무궁한 발전은 한 사람의 희생이 있었다든가,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의 인상착의. 그들이 출몰하는 위치는 지도에 표시해보니 제법 한정된 구역이었다. 날이 갈수록 초라해지지만 그럼에도 아직 명맥이나마 간신히 잇고 있는 항구를 낀 작은 마을이었다.

단시간에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이 생활적으로 쓰이게 되면서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이동 수단이 가장 먼저 사라져갔다. 비행기가 그랬고, 선박이 그랬다. 해저터널을 통한 모노레일도 있을 정도니까. 공항은 폐쇄되어 다른 건물이 들어섰고, 항구는 사람들이 떠나면서 자연히 버려졌다. 그럼에도 이 항구는 이 시대에도 낭만을 찾는 사람들이 낚싯대니 조각배니 하는 것들을 부러 가져와서 어시장처럼 꾸며내는 것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돈이 모자라는 사람은 없었으므로 이는 순전히 단발성 이벤트로 거의 물물교환장에 가까웠지만 모인 사람들끼리는 즐거워했고 딱히 제지하려는 사람도 없었다.

나와 파트너가 딱히 좋은 의도로 찾아온 것이 아닌 것이 은근하게 드러나도 사람들은 순순히 묻는 말에 답해주었고, 경계하는 사람도 없었다. 사실 숨길 것도 없었다. 우리가 쫓는다고 생각했던 거대한 암흑 조직은 사실 존재하지도 않았다. 아니 한 때는 존재했지만 최초에 강한 의견을 피력한 사람이 후계조차 남기지 못하고 죽어버리고 나서는 구심점을 찾지 못한 조직은 자연히 스러진 것이다. 역대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이들이 모여 만든 단체가 그러했듯이. 남아있는 사람들은 한때의 치기어린 생각으로 살았던 그 때를 회상하며 추억을 가지고 노닥거리는 것에 만족했고 그들은 그 흔적을 나와 파트너에게 전부 보여주었다. 극비 자료들이라고 모아놓은 것들도 가히 음모론이라 할 법한 허황된 내용이었다.

그동안 내가 쫓은 건 뭐였지? 헛웃음이 나올 것 같은 상황에 내 눈에 띄인 정육면체 소형 저장 장치가 보였다. 사진 파일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조작 없는 실제 증거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부분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것은 나와 파트너가 잃어버렸던 옛 친구의 마지막 행적에 대한 실마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 다음 추적은 망설였는데, 이건 이미 너무도 옛날에 끝나버린 일이고, 더는 내가 노력한다고 하여 맞설 수 있는 상대도 아닐 것이 분명했다. 갈피를 잡지 못하는 나에게 그 어떤 결론이 나더라도 나의 판단을 믿는다고 파트너가 말했다.

그리하여 나와 파트너는 우리가 쓸 수 있는 모든 권한으로 기밀 문서들을 파고들었다. 한곳에서 하면 위치 추적이 될까봐 괜히 여기저기 이동하면서, 때로는 사람들이 가득한 PC카페에서, 때로는 사람 없는 모노레일 플랫폼에서 모든 문서를 까봤다. 그리하여 얻게 된 추측은 이러했다. 시간을 이동하고 공간을 좁혀서 이동하는데 들어가는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가. 그저 숨쉬듯 들이마시는 공기처럼 있어서 써왔던 그 모든 에너지의 원천은? 언젠가부터 존재하는 게 당연해서 편한대로 썼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면? 나와 파트너는 다음 적임자를 찾아내라는 기밀 문건을 몇 가지나 발견했고, 몇 명의 어린 아이들의 신원이 말소된 흔적을 찾아냈고, 그것들이 정말로 처음 시간을 조종할 수 있게 된 이후로 생긴 일이라는 걸 알아버렸다.

그 모든 문건들이 나온 출처는 어딘가 하면, 현재는 유적이자 박물관으로 쓰이는, 한 때는 지하 4층부터 지상 3층까지 빼곡하게 사람을 채워넣을 수 있던 거대한 공항 건물이었다. 이 건물은 내부 관리를 어느 정도는 하지만 몹시도 최소한의 인력만 두는 까닭에 외곽 지역은 거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낡아빠진 플레이트에 기록된 지도를 보고 나와 파트너는 지하에서 침입해보기로 했다. 어차피 지상층은 전부 다른 목적으로 쓰이고 있었으니 뭔가가 있다면 지하 뿐이었다.

지하는 불 켜둔 것 하나 없이 어두컴컴했는데 사방이 온통 트여있었다. 층 수의 구분이 의미없게 모든 지하층을 다 터놓은 것 같았다. 정 중앙에는 거대한 돔과 그 안에는 사람으로는 도무지 보이지 않는 괴이한 것이 하나 갇혀 있었는데 꼼짝도 못하게 박제를 해두었다. 망연하게 보고 있자니 지하의 관리자인 듯한 사람이 와서는 멋대로 떠들었다. 또 일 잘하나 감시하러 왔냐느니, 내가 이보다 더 어떻게 잘하겠냐느니, 해도 안 비치는 곳에서 365일 24시간 저 괴물같은 놈만 보고 있어야 하는 자기 생각도 해보라는둥.

나는 그 말을 거의 흘려들었다. 주변 모니터에서 뜨는 화면을 보면 이 괴물이 전 도시의 에너지 소모를 감당해내는 게 맞는데, 이것이 원래는 사람이었다는 게 믿을 수 없어서. 그것도 내가 오래전에 잃어버린 그 친구인 게 믿기지 않아서.

모든 발전소를 없애도 충분했던 이 에너지 공급 기기는 자료가 맞다면 한참 예전에 발명된 기계였다. 단지 파장이 맞는 사람만 1명이라도 있으면. 그러나 파장이 맞지 않는다 해도 오래 쓸 수 없다 뿐이지 발명된 당시에는 정치권력다툼에 자주 사용된 것 같았다. 그랬기 때문에 최후의 승자는 모든 기록을 말살했고 아는 사람도 싹 다 정리한 다음 무슨 새로운 천연 에너지를 발견한 것처럼 사람들을 선동한 다음 모든 것을 공항 지하 부지에 묻어 숨겨버렸다. 그렇게 대를 이어 평화로워진 시대에도 도시에서는 은연중에 사라지는 사람이 생겼고 그들의 희생으로 사람들은 자유를 누렸다.

이제 어째야 할까. 나는 갈피를 잃었다. 뭘 위해서 살았는지도 모를 정도로. 내가 쫓아온 것이 모두 허상이었다.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영웅의 후손이라며 나를 무릎에 앉혀놓고 옛날 얘기 하듯 우리 집안의 역사를 설명해주던 모습이. 나는 대대로 타임머신을 만들어낸, 우리 집안에서 가장 칭송받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하지만 그것마저 전부가 진실은 아닐 것 같았다. 그럴 거라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사실을 알아야만 해. 나는 그 생각만으로 파트너조차 챙기지 않고 도망치듯이 부모님이 사는 본가로 향했다. 그러나 그 집은 사람이 싹 다 증발한 것처럼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남아있는 것은 단지 생활감 넘치게 놓여있는 물건들 뿐. 그중에 눈에 띄는 건 새것처럼 정돈된 채 남아있는 꿈을 통한 시공간 이동 장치였다. 꿈을 통해 정신을 과거의 본인, 또는 미래의 본인에게 의식을 넘기는 것인데. 꿈이라는 것이 원체 불확실하다보니 이것은 실체를 직접 건널 수 있는 방법이 도입되고 나서는 안전상의 이유로 금지된 물건이었다. 그리고 그것의 의미를 나는 보자마자 알았다.

타임머신의 개발자는 먼 조상의 얘기가 아니었다. 나의 엄마는, 어떻게 한 건지는 몰라도 미래의 초상을 손에 넣었고, 그를 바탕으로 본인의 미래와 세계의 미래를 결정짓는 사건을 만들었고, 만약을 대비해 본인과 나의 의식을 미래로 옮겨 갈아탄 것이었다.

나는 꿈을 통해 나의 과거로 돌아갔다. 자랑스럽게 나를 무릎에 앉혀 집안의 역사를 읊어주던 엄마에게로. 어린 내가 엄마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리자 엄마는 나를 달래주었다. 네가 할 일을 위해 돌아왔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해. 하지만 나는 견딜 수가 없었어. 모든 게 시작되기 전에 엄마를 죽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아무런 확신도 없었지만, 내 손은 이미 엄마를 찌르고 있었다.

5천자가 넘어가네 ㅋㅋㅋㅋㅋㅋㅋ

여튼 나온 사람 얼굴이 다 아는 얼굴이어서 깨고나서도 굉장히 심란하게 된 꿈. 파트너는 애인님이었고 친구는 옛날 친구고 엄마는 진짜 엄마였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은근히 아는 사람 얼굴이었음 으으 내 꿈은 왜 꼭 이렇게 피곤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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