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비] 울적하지 않으려고 오늘도 노래를 불러

 

울적하지 않으려고 오늘도 노래를 불러 (22/8/10)

 

가능한 한 재택 근무로 근무 방식을 바꾼 지 한참 된 어느 날이었다. 모니터를 앞에 두고 고심하던 페일드라스가 키보드를 몇 번 두들겼을 무렵에, 그는 갑자기 들려오는 괴상한 소리에 문을 향해 고개를 홱 틀었다. 그 이상한 소리는 잠깐 끊겼다가 다시 가늘게 이어졌다. 저런 소리가 날 구석이 없는데. 페일드라스는 의아함에 몸을 일으켰다.

방 밖으로 뛰쳐 나온 그의 눈에 비친 것은 소파에 엎어진 채 기이한 소리를 내고 있는 스트라디바였다.

스트라디바는 뭘 보고 있는지 모를 시선을 땅바닥에 고정한 채 바닥에 닿는 왼손으로는 뭘 찾는 것처럼 손끝으로 바닥을 직직 긋거나 둥글게 원을 그렸다. 그러면서 입으로는 쉴 새 없이 소리를 내는 것이다. 소음이라 치부할 수도 있겠으나 이내 페일드라스는 그 소리가 일정한 박자를 가지고 있음을 알아챘다.

언뜻 뇌리를 스치는 것은 창가에 기대 앉아 다리를 덜렁거리며 유행하는 노래를 흥얼거리는 소년의 모습이었다.

눈앞의 스트라디바에게서는 더 이상 활기찬 모습도, 앳된 모습조차 찾아볼 수 없었으나.

“놀랐잖아.”

사실은 사실이었으므로 페일드라스는 짜증부리듯 한 마디 쏘아붙였다. 언제나 그렇듯 스트라디바는 대꾸는 커녕 그를 바라보지도 않았다. 대신 으, 또는 에, 라고도 구분할 수 없는 노래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음정이 몹시도 낮은 까닭에 본래의 멜로디는 좀처럼 떠올릴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묘한 울림은 한동안 떠올릴 일 없는 어떤 기억을 불러왔다.

‘또 그 노래냐. 레퍼토리 좀 바꿔.’

‘공짜로 듣는 주제에 말이 많아. 돈 줄 거 아니면 닥치고 듣기나 해.’

아직 페일드라스가, 스트라디바가 교복을 입고 다니던 한참 옛날 일이었다. 휴식 겸 땡땡이로 기숙사 방에 돌아가면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으로. 스트라디바는 꽤 자주 턱하니 창틀에 걸터 앉아 노래를 불러대고는 했다. 가사도 하나같이 흔해빠진 것들이었다. 사랑 노래들. 네가 나를 돌아봐준다면, 나는 내 모든 걸 줄 텐데. 따위의 어처구니 없는 내용들. 그게 뭐 그리 좋다고 저리 호들갑스럽게 불러제끼는지. 그 때의 페일드라스는 그저 한심하게만 여겨졌다.

지금은…….

“그만 불러.”

하지 마. 페일드라스는 스트라디바를 집에 들이고 나서 처음으로 그에게 금지의 뜻을 담은 말을 꺼냈다. 자꾸만 갈 곳을 잃고 방황하는 손을 마주 꽉 잡았다. 바닥만 보는 시선을 들어올렸다. 저를 보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흐릿한 눈을 곧게 바라보았다.

애절함도, 울적함도 없는 널따란 거실은 고요하기만 해서.

“…….”

돌아오지 않는 대답 앞에서. 페일드라스는 다른 대답을 들은 듯 했다.

‘매번 똑같은 노래 질리지도 않냐?’

‘아 신청곡 넣을 거면 돈 내놓으라고.’

‘뭐라는 건지.’

‘노래라도 불러야지 답답해서 못 살겠다고. 두고 봐라, 돈 많은 놈 하나 잡아서 뻥뻥 놀면서 자유롭게 살 테다.’

그래서 그 잘난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지. 그 중에 반은 성공한 셈이니 너는 이제 만족스러울까. 되도 않는 생각에 페일드라스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러는 중에도 잡혀있는 손은 그의 손 안에서 줄기차게 꼼지락거렸다. 너무 세게 잡고 있었나 하여 놔주니 스트라디바는 슬그머니 페일드라스의 뺨에 손을 대었다.

화내지 마세요.

부쩍 자주 입에 담는 말이 또 다시 나올까 두려워 페일드라스는 아직 굳게 다물린 스트라디바의 입술 위로 먼저 손을 뻗었다. 차라리 그 듣기 괴로운 노래라도 좋으니, 그 말만은 하지 않길 바랐다.

사랑해 주세요.

차라리 노래처럼 말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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