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둥새] 뜻밖의 취미

 취미라고 하면 무엇을 지칭하나? 딱히 관심이 없어도 자주 하게 되면 그것 또한 취미라 붙일 수 있을까? 하릴없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을 내버려 두면서, 필라스는 지금도 강물에 드리운 낚시찌나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뭐가 되었든, 시간은 참 잘만 지나갔다. 강물에 흘러가는 것이 물고기만은 아닌 듯했다.

 퐁당, 오랫동안 기다리는 것에 반해 찌가 수면 밑으로 끌려 내려가는 것은 가히 찰나의 시간이었다.

 팽팽하게 당겨지는 낚싯대를 이리저리 끌어당겨보면 손 안에 잡히는 물고기는 또 다시 한줌만한 조그만 것이었다. 대체. 필라스는 의심의 눈을 거두지 못했다. 이런 조그만 놈이 대체 무슨 힘으로 낚싯줄을 그렇게 끌어당기는지. 어디 가서 그가 딱히 뭘 하고 다니는지 얘기하지 않는 까닭은 그런 연유이기도 했다. 자랑하려고 하는 건 아니지만 이렇다 할 성과가 도통 생겨야 말이지. 특히나 상대가 심통 맞은 그의 동거인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하여간, 이건 돌려놔야겠어. 필라스는 별 미련 없이 낚은 물고기를 강에 던졌다. 민물에서 낚시를 한다는 것부터 문제인가? 하지만 전에 같은 곳에서 낚시를 하던 사람들은 제법 무게가 있어 보이는 것도 곧잘 퍼 나르지 않던가. 미끼가 문제인가? 재주가 없으니 괜히 도구를 탓하고 만다. 목적 없이 시간만 축내는 것이 전부라 차라리 다행이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할 일이 잦았다면 그만 두는 것은 순식간이었을 것이다. 할 만한 것이 이것뿐인 것도 아니거니와.

 달리 말하자면 하염없이 흘려보낼 수 있는 곳을 찾고 있던 것일지도.

 “오늘은 글렀나.”

 성과라고는 조막만한 송사리―그는 작은 것들은 모조리 통틀어 그리 칭했다―두어 번. 그나마도 물에 다 돌려주고 나니 손에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해도 어느새 하늘 한가운데에 걸려 있던 것이 서쪽 너머에서 오늘의 역할을 끝내가고 있었다. 집에 빈손으로 갔다가는 이 시간까지 아무것도 안하고 어딜 쏘다닌 거냐며 사납게 물어댈 몹쓸 동거인 생각에 필라스는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지나가는 동물이라도 잡아가야 하나 싶은데 곧 어둑어둑해질 이맘때에 헛걸음하는 눈 먼 것들은 털 한 자락도 보이지 않았다. 이걸 어쩐다. 들고 나온 낚싯대를 챙겨 등에 짊어지고서 그는 한숨으로 가득 찬 길을 한걸음씩 걸었다.

 “너 ** 왜 안 하던 짓 하고 싸돌아다녀, 어?”

 아니나 다를까, 집에 오자마자 필라스를 맞아 주는 것은 사납게 쪼아대는 소리였다. 으레 있을 법한 인사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사람을 쥐 잡듯이 몰아붙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못 들은 양 필라스가 아퀼라의 옆을 지나쳤다. 정확히는 지나치려 하는 순간에, 그는 불의의 기습을 당하고 말았다.

 “새끼가 어딜 가! 내가 먼저 물어봤잖아!”

 “아! 이 미친……!”

 비껴 맞았지만 그렇다고 무릎 뒤쪽으로 가해진 위력이 결코 덜하지 않았다. 절로 풀썩 꺾이는 다리를 부여잡으며 주저앉은 필라스가 낮게 욕지기를 내뱉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퀼라는 필라스의 사정 따위는 조금도 봐주지 않았다.

 “** 어? 집에서 밥이나 할 것이지 대체 왜 바깥은 처나돌아다니다가 이제 들어오냐고!”

 “내가 그걸 왜 말해줘야 하냐?!”

 애초에 그들 사이는 사전 고지가 필요한 관계도 아니었다. 꼭 자기는 행선지를 밝히고 다닌 것처럼! 어처구니가 없는 아퀼라의 행패에 필라스는 짜증만 솟구쳤다. 알면 대체 뭐하게? 지끈거리는 머릿속에 며칠 되지도 않은 기억이 차근차근 펼쳐졌다.

 그때도 그놈의 망할 호기심이 들끓는지 굳이 구태여 아퀼라는 필라스를 따라오겠다고 해댔다. 그 순간에도 필라스는 저러다 말겠지, 라는 안일한 마음으로 그래라 하고 아퀼라를 내버려두고 말았다. 필라스가 으레 가는 낚시터까지 신나서 쫄래쫄래 따라온 아퀼라는 처음에는 졸졸 흐르는 물가를 보면서 즐거워하긴 했다. 얕은 곳을 첨벙거리며 맴도는 것을 내버려두며 필라스는 챙겨온 휴대용 의자를 펴서 자리를 잡았다. 낚싯대를 물 위로 드리우며 있길 얼마 지나지도 않았을 때. 그가 익히 예상한 대로 아퀼라는 금세 싫증난 티를 팍팍 내기 시작했다. 필라스의 옆에 풀썩 주저앉아서는 신경질을 툭툭 부렸다.

 “집에 언제 갈 건데?”

 “나온 지 10분도 안 됐다.”

 “뭔 개소리야. ** 미쳤나 여기까지 오는 데만 5분은 썼겠네.”

 “그럼 너는 가라.”

 아퀼라가 얼마나 쨍알거리건 필라스는 앉은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며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하염없이 찌가 움직이는 것만 보고 있자니 옆에서 슬슬 발로 다리를 치려고 드는 게 뻔히 느껴졌다. 또 시작이지, 또.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굳이 그쪽으로 돌리지도 않고 필라스는 슬쩍 다리를 옮겼다. 성질 급한 발바닥이 금세 따라붙어 퍽 소리가 나게 차대지만 않았어도. 기우뚱 기울어질 뻔한 몸을 어떻게든 바로 세운 그는 간신히 낚싯대를 놓치지 않았다.

 “집에 가라니까.”

 “아 ** 집에 가면 뭐가 있냐고.”

 “뭐는 있겠지.”

 “뭐가 뭐야. 아오 * 심심해. ** 재미없어.”

 아퀼라는 그대로 필라스의 다리에 들러붙었다. 끈덕지기가 꼭 조금만 수풀을 뒤져도 튀어나오는 호아보어 무리와 다를 게 없었다. 심심한 건 너지 내가 아니다. 필라스가 다리에서 쳐낼까 고민하는 사이에 낚싯대가 피잉 끌려들어갔다. 반사적으로 잡아채는 손 위로 다시 흥미를 되찾은 시선이 다가온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흥미가 낚싯바늘에 끌려나온 물고기가 고작 손바닥만 한 크기라는 것을 확인한 다음 순식간에 실망으로 식어버리는 것 또한.

 “하. 너 ** 고작 이거 낚으려고 여태 기다린 거야?”

 “뭐. 원래 그런 거라는데.”

 “원래 그런 게 어딨냐? ** 이거 ** 웃긴 새끼네.”

 뭐가 그리 웃긴지, 아퀼라는 배를 잡고 깔깔 웃어댔다. 비웃음을 사고 있는 꼴이 스스로가 보기에도 처량하긴 하였으나 어쩌겠는가. 필라스는 입술을 삐죽이고는 애써 팍 식은 감정을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에휴, 어느 세월에 그렇게 낚아서 밥해서 처먹냐. 아퀼라는 한참을 숨도 안 쉬고 웃다가 벌떡 일어나서는 어디론가 휑하니 가버렸다. 필라스는 차라리 그가 그대로 영영 돌아오지 말길 바랐다.

 허나 몹시 뻔하게, 또는 불운하게도, 아퀼라는 기세도 등등한 모습으로 필라스의 옆에 돌아왔다. 품에는 무언가 갓……찢어낸 듯한……어느 모로 보나 가죽으로 만들어졌음이 분명한 그물이 안겨 있었다. 필라스가 코를 찌르는 냄새에 뭔가 불평을 하려던 것도 잠시, 튀어나오려던 불평도 쏙 들어가게 할 만행이 눈앞에서 저질러지고 말았다. 아퀼라가 품에 안고 있던 그물을 냅다 필라스의 바로 앞―낚싯대가 드리워진 곳으로 던진 것이다.

 풍덩! 큼지막한 소리와 함께 잔잔하게 흐르던 물살의 흐름이 크게 튀어 올랐다. 대부분은 그 앞에 있던 필라스의 위로 쏟아져 옷이고 머리고 흠뻑 젖게 만들었다. 이게 지금 뭘 하는 거지? 때 아닌 난동에 필라스는 잠깐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다. 물이 싸늘하게 식혀준 머릿속에는 잡고 있던 낚싯대를 내던지고 싶은 충동으로 활활 불타고 있었다. 티끌만큼 남은 한자락 이성으로 내던지지는 않고, 그는 들고 있던 것을 천천히 의자 옆에 세워두었을 뿐이다.

 “야.”

 그리고 물에 불린 하얀 미역 꼴이 된 필라스가 희번득하게 눈을 빛내며 홱 아퀼라를 째려보았다. 그럼에도 아퀼라는 조금도 거리낌 없이 뭐, 라고 묻는 듯 팔짱을 끼고 필라스를 마주 쳐다보았다. 필라스는 성가시게 눈앞을 가리며 물기를 뚝뚝 흘리는 하얀 머리카락을 뒤로 휙 넘겼다. 머리털을 쥐어짜는 것도 거추장스러워 그는 그대로 아퀼라의 머리 위로 고개를 숙이며 짜증스럽게 쏘아붙였다.

 “그냥 집으로 가랬지.”

 “허 이게 도와줘도 시비네?”

 “돕기는 네가 뭘 도와?”

 “** 너 하는 꼬라지 보니 오늘 밥을 못 먹게 생겨서 하는 말 아니야!”

 그러니까 아퀼라는 물을 끼얹는 것은 둘째 치고 방해한 것조차 사과할 마음이 티끌만큼 없으셨다. 필라스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아퀼라의 당당한 얼굴에 말문이 콱 막히고 말았다. 그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당장 집으로 가라, 같은 아무럴 것도 없는 말이었다. 그러나 아퀼라는 그것만으로도 단단히 토라진 듯, 쌩하니 그의 정강이를 보란 듯이 발로 차버리고는 그물도 버려두고 그대로 달려가 떠나가고 말았다.

 마음 내키는 대로 달리면 결코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로 점점 작아지는 아퀼라의 뒷모습을 보면서 필라스는 또 다시 울컥 치솟는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먼저 잘못한 건 저쪽인데 왜 내가 쟤 기분을 맞춰 줘야해? 그러면서도 어쩐지 집으로 가는 길이 눈에 밟히는 것도 사실이라. 그는 한동안 심란한 죽상을 하고 의자에 앉아 낚싯대나 멍청하게 끌어안고 있었다. 이도저도 아니게 평행선을 달리던 감정이 한쪽으로 무너지는 것은 그로부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여간, 한 번 봐줬으면 되었지 두 번 숙여줄 생각은 필라스에게도 없었다. 말도 없이 자꾸 나갈 거냐고 따지는 아퀼라에게 필라스는 꿋꿋하게 아무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비록 차인 데를 여러 번 차이고 그걸 피하려고 들었다가 휘청거리는 비루한 꼴을 하고 있더라도.

 그런 날이 또 다시 여러 번. 그리고 필라스가 다시 한 번 자신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올 즈음에. 그는 평소라면 무시하는 전단지 게시판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붉은 물고기가 유난히 인상적인 포스터였다.

 ‘전문 채집 조어 Fishing Club ~ 회원을 모집합니다.’

 평소라면 단체 생활에는 그리 내키지 않았을 것이나, 동호회 정도라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먼저 들었다. 무척이나 이례적인 스스로의 결정에 필라스는 스스로도 조금, 많이 놀라고 있었다. 분위기만 가서 살핀다고 하고, 정 아니다 싶으면 그만두어도 되니까. 스스로에게 하는 말에는 조금 지루해진 일상의 반복을 잠깐이라도 엎어보고 싶은 것도 없잖아 들어있을 것 같았다. 그 이유에는,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그의 동거인이 있을 테고.

 으. 더는 생각하기도 싫었다. 낚시꾼들과 몇 번 얘기라도 해서 크고 좋은 녀석으로 낚는 비법이라도 알면 그 녀석의 잘난 코도 지긋하게 눌러줄 수 있을지 누가 알까. 필라스는 각종 전단지가 수북하게 꽂힌 게시판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가 원하는 물고기가 그려진 전단지 또한 목판으로 여러 번 찍은 듯 같은 전단지가 다발로 고정되어 있었다. 한 장쯤은 가져가도 괜찮지 않을까. 매끄럽게 한 장만 챙겨 두 번 접어 품의 안주머니에 넣은 그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서둘렀다. 그 혼자 있는 조용하기 짝이 없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필라스는 바로 연락처 주소로 보낼 편지를 간단하게 적어갔다.

 ‘동호회 회장……귀하.’

 아직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구구절절 적을 것도 없었다. 필요한 용건은 충분히 적었다고 생각한 필라스는 그대로 편지를 봉해 다시 집 밖으로 뛰쳐나가 그대로 부쳤다. 답장이 돌아오기까지는 그리 며칠 걸리지 않았다. 그동안 아침마다 우편함 주변을 서성거리는 그를 보고 아퀼라가 퍽 수상쩍게 여기긴 했지만, 아무렴 아무 상관도 없었다.

 ‘안녕하신가.’

 로 시작하는 편지에는 모이는 날짜와 장소를 상세히 설명해주고 있었다. 발렌우드의, 그린셰이드의, 우드하스라. 필라스에게는 그리 친숙한 지명은 아니었으나 퍼뜩 떠오르는 것은 있었다. 몹시도 친애하는 그의 동거인 아퀼라 그린우드가 툭하면 으르릉 성을 내는 그의 고향이 그쪽 아니었던가? 이리 공교로운 일도 다 있다. 그러나 그가 신경 쓸 것은 하나도 없었다. 듣기에는 몹시 성가신 듯도 하였는데, 하루 정도 머무르는데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으려고.

 하여 그는, 며칠 뒤 있을 모임에 아주 참석을 할 마음을 굳혔다. 그리고 당일에 정말로, 받을 사람이 원하는 대로 외출을 알리는 쪽지를 대문짝만하게 남기고 떠났다.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 기다리지 말고 밥 해둔 거 알아서 잘 먹어라. ―Phllyn’

 글씨도 요란하지 않게 오늘 쓴 중에 가장 마음에 들게 써진 흡족한 쪽지를 두고 필라스는 미리 챙겨둔 짐가방을 훌쩍 매고 이른 아침부터 집 대문을 나섰다.

 

 

2 thoughts on “[기둥새] 뜻밖의 취미

  1. 선생님, 저 지금 진짜 즐겁게 읽었어욬ㅋㅋㅋ특히나 아퀼라가 냅다 가죽그물(!)을 만들어서 던지는 걸 보고 터졌습니닼ㅋㅋㅋㅋ아아니 이 친구야 그거 남획 아니야?!?! 여기 전기충격기라도 있었으면 냅다 물에 던져서 동동 뜬 고기들 건져냈겠어요! 여느 때처럼 투닥거리는데 분명하게 신경쓰는 이런 텐션 너무 조아요 선생님… 앞으로도 건필해주새오…

    1. 으헤헤 재미있으셨나요! 이번에 따로 진행하는 게 있어서 이 글은 프리퀄적으로 써본 거랍니다 ㅋㅋㅋㅋㅋ
      아킨은 낚싯대보다는 그물을 쓸 거라고 오너분이 말씀하셔섴ㅋㅋㅋㅋㅋㅋㅋ 그것을 반영해봤습니다!
      전기충격기로 물에 찌지직해서 동동 뜬 고기들 건져내는 건 제가 하고 싶은 건데…..망할 터주작 망할 희귀 물고기!!! 크아악!!
      히히 사이가 좋은 듯 아닌 듯 아웅다웅하는 녀석들 이번에도 저도 즐겁게 써봤습니다 꺄호!!! 다음에도 많은 관심 주시면 새우가 춤을 춥니다!! 히히 댓글 달아주셔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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