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Day at a Thyme with Phllyn 01

11월 22일 (2장, 계획된 만남)

-다이아몬드 에이스, 하트 2 (녹슨 열쇠, 자칭 요정)

 

 필라스는 집 앞의 마당을 살피고 있었다. 마당이라고는 해도 잡초가 무성하기만 한 공터 수준이었지만. 본래 이런 저런 꽃을 피워냈을 성마른 땅에는 무릎에 닿을 정도로 웃자란 풀들과 이름 모를 들꽃이 가득하다. 생생하게 하늘을 향해 뻗은 가지 위로 하얀 꽃들이 방울방울 매달린 것을 한참 들여다보는 그가 생각한 것이라곤 고작 ‘치워내려면 한세월이겠어.’ 뿐이다. 그가 여러 풀들을 눈앞에 두고 일일이 약용 식물을 가려낼 필요성을 느끼는 것도 아닐뿐더러. 대체적으로 아는 범위도 상처 회복에 도움이 되는 것들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재료들에 불과했다. 무엇보다 언뜻 눈에 띄는 것들만 해도, 저 풀들은 온통 낯선 것들뿐이다. 이를테면 죄다 밀어버려야 하는 잡초들.

 집 벽을 타고 오르려는 줄기들부터, 지나치게 햇빛을 받아 버석하게 흐느적거리는 줄기들까지 집요하게 뜯어낸 필라스는 손 안에 한 가득 남은 풀떼기들을 훌쩍 던진다. 사방이 조용한 가운데 연신 우드득 뜯기는 소리와 풀썩 쏟아지는 소리만 연달아 들리는 가운데.

 “아야.”

 무언가가 불평불만을 터뜨리는 소리를 낸다. 생각도 못한 높고 가느다란 목소리에 필라스는 흠칫 뒤를 돌아보았다. 버려진 집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그러나 눈에 들어온 누군가는 웬 조그만, 하얀 털모자를 뒤집어 쓴 작은 꼬마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 밑으로 입고 있는 하얀 망토에도 털뭉치가 장식으로 매달려 있었으므로, 꽤 귀여운 모습이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집주인일까? 생각하면 고개를 기울이게 되었다. 여하간 그 조그마한 이는 모자며 망토에 잔뜩 들러붙은 마른 잎사귀와 줄기조각을 떼어 내는데 여념이 없다. 그 모습을 보자니 필라스는 역시 문제의 소지가 스스로에게 있다고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여 어느새 그에게 다가가 직접 돕고 말았다.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으면 쥐어박으려고 했는데.”

 얼추 부스러기들이 다 떨어졌나 할 즈음에 대뜸 듣는 말이 저것이다. 생각보다 더 무게감 있는 말에 필라스가 재빨리 손을 거두었으나 조그만 이가 입은 옷만큼이나 하얀 머리카락이 잡히는 것이 더 빠르다. 마주치는 얼굴은 모자로 반 이상 가려졌으나 입술은 명백한 호선을 그렸다. 그는 못내 즐거운 어투로 말을 꺼냈다.

 “내 구역에 누가 얼쩡거리는 게 오랜만이라.”

 다음에 올 때는 집들이 선물이라도 갖고 와야 하나? 실없는 소리를 늘어놓으면서 그는 잡고 있는 필라스의 머리카락을 놓지 않았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필라스도 자연히 저를 붙잡고 있는 손을 빤히 내려다보게 되었다. 조그만 손이 연신 머리카락을 한 움큼 쥔 그대로 매끄럽게 쓸어보고 있었다.

 “그런데 너는 피냄새가 너무 나는구나.”

 너무 말썽부리면 내쫓아버릴거야. 진담인지 아닌지 구분이 되지 않는 말을 조잘거리는 그는 드디어 머리카락에서 손을 떼고, 대신 멋대로 필라스의 손을 잡았다. 무언가 손 안에 묵직한 무게가 느껴지자 필라스는 빠르게 손을 빼냈다. 손 안에는 녹이 슨 열쇠가 있을 따름이다.

 “가져.”

 그 말을 끝으로, 아까까지 얘기를 나누던 것이 거짓말처럼 조그만 이는 사라졌다. 오직 필라스에게 남은 열쇠만이 아까 전의 대화가 현실임을 증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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