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둥새] 어린이날 기념

 필라스는 비장한 얼굴로 그의 작업대를 바라보았다. 한쪽에는 조그만 것 9개를 담을 수 있는 상자가, 다른 한쪽에는 달달한 냄새를 가득 풍기는 사탕과 초콜릿이 그득하게 쌓여있었다. 지금 그의 업무는 이런 저런 색소를 입혀 알록달록 반짝이는 사탕과 흰색과 고동색이 부드럽게 마블링된 달달한 초콜릿을 4알씩 착착 섞어 넣어 포장상자에 담는 것이었다. 그 선물들은 원 내의 아이들에게 하나씩 나누어주어야 할 것이기에 수가 많았고, 분류되지 않은 간식거리는 필라스의 책상 위를 다 뒤덮을 정도로 쌓여 있었다. 해질 때까지도 일이 밀려 여기까지는 손도 못대고 있다가, 이제는 가히 밤을 새야 할 지경이었다. 지끈거리며 밀려오는 두통에 미간을 손끝으로 꾹꾹 누르던 필라스는 끙 소리를 내며 책상 앞 의자에 털썩 앉았다.

 “거기 늙은이. 불 켜놓고 또 뭐하냐?”

 말버릇하고는 기가 막히는 놈이 고개를 들이민 것도 그 순간이었다. 어렸던 시절처럼 소리도 없이 문을 열고 노란 머리통만 빼꼼 내민 아퀼라가 그 때보다 훨씬 험해진 말버릇만큼 불손한 감람색 눈으로 필라스를 째려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책상 위에 가지각색으로 반짝이는 포장지들을 보더니 눈이 동그래져서는 아예 안으로 쏙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너야말로 안 자고 뭐하냐, 라고 불퉁하게 물어보는 말은 지극히 당연할 정도로 무참히 씹혔다.

 “아? 뭐야. 내일 거 준비냐?”

 “그래. 다 봤으면 나가. 성가시게 하지 말고.”

 “뭐래. 하! 내가 여기 일 도우러 왔다는 거 못 들었냐?”

 아퀼라가 자랑스레 내뱉는 말에 필라스는 끝내 불퉁하게 입술을 팩 비틀었다. 필라스는 그의 보육원에서 독립한 이들을 결코 다시 들여보내주는 일이 없었다. 순전히 자기 안위를 위해서였다. 세월의 흐름을 전혀 느낄 수 없는 그로서는 당연히. 직원들은 교회에 적을 두고 있었으므로 딱히 그가 손을 쓰지 않아도 자연히 몇 년이 지나면 알아서 나가고 새로 들어왔다. 설령 누군가가 어떤 서류가 필요하다는 등의 요청을 보내오더라도 필요한 자료만 정리해서 우편으로 부치면서 올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조작을 하면 했지. 몇십 년을 운영하도록 한 번도 깨진 적 없는 불문율이 아퀼라로 인해 처음으로 박살이 났다.

 어떻게 들어왔냐고 기가 막혀 하는 필라스의 앞에서 자기 소지품을 등에 메고 들어온 아퀼라는 당당하게 봉사 시간 채울 겸 익숙한 곳을 골라서 왔다고 떵떵거리면서 대꾸했다.

 ‘내 말은, 네가 여기까지 어떻게 멀쩡하게 왔냐고!’

 ‘뭐라는 거야. 걸어서 왔겠냐?’

 대화는 애초에 성립될 생각도 없이 서로 하고 싶은 말만 의미 없이 한참을 쏟아부었다. 의기양양하게 거들먹거리던 아퀼라는 필라스가 저를 내쫓을 심산이라는 것을 알아채고는 어릴 적에 종종 그러했듯이 네 정체 까발려버려도 돼? 같은 식으로 을러대기 시작했다. 망할 자식이. 가까스로 이쪽을 향하는 시선들에 어색하지는 않게 웃는 얼굴을 가장한 필라스는 그러나 매서운 눈으로 얄밉게도 씩 웃고 있는 아퀼라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보육원에서 떠난 날로부터도 훌쩍 성장한 듯 제법 껑충해졌지만 여전히 필라스에게는 한참 작았다.

몇 년을 더 먹든 한참 어린 녀석이지. 필라스는 알록달록한 사탕을 무작위로 4개 집으며 헛웃음을 지었다. 하여간 어릴 때나 다 컸다는 지금이나 성가시기 짝이 없었다. 여기까지 곧장 올 수 있었던 까닭도 저 녀석에게 한참 이전에 정체를 들켰기에 먹히지 않는 것인가 미루어 짐작만 할 뿐, 그 이유에 대해 구태여 더 파고들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오늘 하루종일 내내 그를 괴롭힌 자문에 대한 결론도 딱 그와 같았다. 그냥, 내버려두자.

 “아! 그렇게 마구잡이로 넣는 거 아니라고! 손 떼!”

 “도와줘도 **은, 그럼 어쩌라고!”

 “하, 진짜……. 사탕도 초콜릿도 4개씩 넣어라.”

 “별. 귀찮게.”

 “나중에 다아 뒷말이 나온단다. 애들이 얼마나 영악한데.”

 “애들이 다 나 정도만 했어도.”

 “양심은 올 때 차비로 바꿔처먹었냐?”

 손은 분명 쉬지 않고 바쁘게 사탕과 초콜릿을 나르건만, 입도 쉬지 않고 맞붙어 싸우기 시작했다. 어쨌거나 필라스는 필라스대로 규칙을 만들 필요성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주는 대로 순순히 제 몫을 인정하고 받아 기뻐하는 아이도 있는가 하면, 의심암귀에 빠져 받은 주변 아이들의 것도 제 것과 똑같은지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확인을 해야 속이 시원한 싹수 노란 것들도 분명 있었다. 그리고 아퀼라 그린우드로 말할 것 같으면, 이 녀석은 양쪽 다 속하지 않는 대신 필라스의 다리에 매달려 남는 거 있는 거 다 아니까 내놓으라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보따리를 쿡쿡 찔러대는 보편적인 수준과 확실히 남다른 영악함을 선보이는 제3의 케이스였다. 부디 앞으로도 이런 놈은 이후로도 튀어나오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필라스는 조심스레 사탕과 초콜릿으로 상자들을 채워나갔다.

 “하여간, 너같은 놈이 또 나올까 무섭다.”

 “나 하나뿐인 걸 감사하도록.”

 “…….”

 아퀼라가 무심하게 대꾸하자 필라스의 눈초리가 하늘을 향해 휙 치솟아 올랐다. 제정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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