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둥새] 깜짝이야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적막한 미로 한중간에서, 필라스는 고요하게 떠다니고 있었다. 바깥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더는 그의 관심을 끌 수 없었다. 기나긴 전쟁은 그를 몹시도 피로하게 했으며, 깊게 자리한 허무함은 권태와 나태를 불러와 그는 몹시도 게을러졌다. 동족들에게 긍지는 어디로 갔느냐는 비난에도 그는 차라리 태연했다. 그는 바보같은 짓거리에서 빠질 수 있다면 무슨 취급을 받든 개의치 않았다.

 들을 이 없는 연주를 이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웬걸.

 “여기 던전은 뭐 이리 텅텅 비었대.”

 필라스는 타인의 목소리가 이리 생경하게 들릴 수 있는 줄 처음 알았다. 게다가 그 말을 한 이가 활을 든 모험가 행색을 한 엘프라면.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사태에 그는 데굴데굴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어떠한 결론이 나기도 전에, 성급한 화살이 그의 머리칼 몇 올을 찢어내며 뒤편의 벽에 박혔다.

 “아무튼 너만 잡으면 끝이겠지.”

 “…….”

 아, 심지어는 시대착오적인 용사님 되시겠다. 절로 튀어나오는 한숨을 질끈 깨문 입술 사이로 흘려보낸 필라스는 최근 한 번도 꺼낸 적 없는 사회성을 발휘하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 하지만 대체 뭐라고 해야 하는가? 여기에는 너같은 것들이 기대하는 보물은 하나 없고, 애초에 이곳에는 아무도 데려오지 않았으니 텅 비어있다고? 그렇다고 생판 모르는 남에게 구구절절 자기 사정을 설명해야 한다면. 아니. 그럴 일은. 절대로.

 하, 기어코 필라스는 나지막한 탄식을 내뱉었다. 저 기세등등한 용사께서는 또 다시 활시위에 화살을 얹고 있었다. 어딘가가 더 망가지는 것도 사양이었으므로, 그는 지체없이 손에 가느다란 악기를 불러냈다. 대화란 것도 들을 귀가 있는 상대와 하는 법이다.

 “나도 참.”

 기껏 누군가가 들어주는 연주가 이런 것이 될 줄은 몰랐다. 아쉬운 한편, 필라스는 지체없이 플루트의 취구에 입술을 갖다 대었다. 평소와 같이 느리게 흘러나오는 선율은, 겨누고 있는 화살촉만큼이나 예리하게 빛나는 엘프의 눈을 흐리게 만드는데 충분했다. 풀썩 쓰러지는 소리가 나고서도 필라스는 한참 연주를 끊지 않았다. 아니 못한 건가.

 “일단 치워두자…….”

 무릎을 구부려 주저앉은 채 이름도 모르는 금발의 엘프를 내려다보던 필라스는 손짓 한 번에 이 불청객을 그가 거하는 곳 바깥으로 내쫓았다. 입구가 상당히 외진 곳에 있어 알아보는 사람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설마하니 여기까지 들어오는 이가 있을 줄이야. 문단속. 문단속을 하자……. 근래 들어 가장 성실한 결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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